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

Posted by 자유공 자유공
2013. 8. 30. 01:00 ENJOY/재미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Reichstagsbrand)나치독일정권 수립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1933 2 27일 오후 9 14분에 발생했다.

 

파일 : Reichstagsbrand.jpg

 

이는 국회의사당 근처를 지나가던 한 대학생이 의사당의 창문이 깨지면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발견하여 화재신고를 했고, 베를린 소방대가 의사당에 도착했을 때는 의사당은 이미 격렬히 불타고 있었다.

 

소방대와 거의 동시에 도착한 경찰은 불길이 여러 곳에서 동시에 발화한 것을 발견, 아울러 방화용 도구를 소지한채 건물 뒤에 숨어 있던 마리우스 판 데르 루베를 발견했다. 그네덜란드 출신의 공산주의자로 당시 최근에 독일로 넘어온 상태였다.

 

 

아돌프 히틀러헤르만 괴링”(국회의장), 그리고 요제프 괴벨스등이 곧 현장에 도착했고, 화재 현장을 보자마자 괴링은 즉각 화재가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선언했으며, 괴링의 이 선언으로 화재 사건은 수사도 하기 전에 공산주의자들의 방화로 그냥 굳어졌다.

(이후 괴벨스의 일기에서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은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쓰여졌다.)

 

이 사건으로 히틀러는 비상 사태를 선언할 기회를 잡았다.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이전의 현실이 히틀러에게는 좋지 않은 상황이 었기 때문이다.  

 


 

참고 : 독일 나치의 수뇌부 3인방 괴링”, “괴벨스”, “헤스

 

l  괴링

히틀러의 왼팔로 나치돌격대(SA) 대장이었으며, 1933년 프로이센의 총리가 되어 급격한 나치화를 단행하는 장본인. 1935년 독일 공군을 창설한 후 공군사령관에 취임, 2차 대전에서도 독일 공군의 총수였으나 결국 미국에게 제공권을 빼앗긴 후 전쟁이 끝난 직후에 체포. 국제군사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처형 직전에 자살.

 

l  괴벨스

1928년 국회의원에 당선, 1929년 나치당 선전부장이 되어 새로운 대중적 선전수단을 고안 1930년대 나치당이 급성장 하는 데에 크게 기여. 나치가 정권을 획득한 1933년 이후에 독일의 문화계를 완전 장악하고 총력전 대비. 1945년 히틀러가 자살한 다음 날 히틀러를 따라 자살.

 

l  헤스

1925년에 히틀러의 비서. 1933년 히틀러 정권이 성립하자 총통 대리가 되며 같은 해 국무장관. 히틀러의 제2차 세계대전 개전연설에서 정식으로 괴링 다음가는 총통 후계자로 임명. 전쟁이 끝난 후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 1987 8월 복역 중 사망

 

 

좌측부터 히틀러, 괴링,괴벨스,헤스


 

 

이 당시 (1933 3 5일) 총선거가 불과 며칠 남지 않은 시기이다. 히틀러는 의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법률을 의결할 수 있는 전권위임법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의회 의석수의 2/3이상 찬성이 필요했다. 그러나, 1933 1월 나치는 의석의 32%만 차지하고 있어 전권위임법을 통과시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권위임법을 통과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독일내 반공산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었으며, 공산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전권위임법이 반드시 통과 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아울러, 전권위임법에 반대 투표를 할 수 있는 공산당의 숫자(의석의 17%)를 줄이기 위해 독일공산당의 추방을 계획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 의사당 방화 사건이 발생된 것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이다.  

그러나,  우연이 아니라는 증거가 몇가지 뒷받침을 하고 있다.

 

 

"1933년 2월 22일"

화재 발생 5일전 괴링은 SA를 보조 경찰로 격상시켰다. 경찰과 늘 대립 관계였던 SA SS가 경찰을 지원하는 반() 국가조직이 된 것이다. 또 화재는 선거 기간 중에 발생된 점

2 10, 괴벨스는 선거 기간 중 유세 활동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작성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히틀러는 비행기까지 동원해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유세 활동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 계획서에는 2 25일부터 27일까지 아무런 계획이 잡혀있지 않았다. 특히 27일에는 아무런 연설도 없다고 공식화 한 것이다.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이후

1933 3 "라르"라는 이름의 SA대원이 강도 협의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라르는 지난 2월의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을 언급하며 폭로하지 않는 대가로 강도죄를 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입회 서기인인 라이네킹이 이 사실을 기록하여 상부에 보고, 이 사실은 게슈타프에 통지되었고 즉시 라르는 체포, 며칠 후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사건의 전말은 2월 어느 날 밤, 돌격대 사령관 에스트르 륌의 충복인 카를 에른스트가 지휘하는 호위대에서 10명의 대원을 선발했다. 라르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들은 2 27일에 국회의장 공관으로 가서 대기했다. 당시 국회의장은 헤르만 괴링이었다. 오후 9, 에른스트가 그들을 이끌고 의사당으로 가는 통로를 통해 의사당에 들어갔다. 그들은 각자 방화 연료가 들은 통을 2~3개씩 지급받았고, 그날 밤 9시에 에른스트의 신호로 일제히 불을 질렀다. 10분만에 작업을 마친 그들은 왔던 길로 되돌아갔고, 그 다음에 "마리우스 판 데르 루베"가 주머니에 성냥 및 점화재료를 소지한 채 의사당으로 들여보내졌다는 것이다. 이 음모에는 괴벨스가 아이디어를 냈고, 괴링이 협조했으며, 실무 지휘는 룀의 수하인 에른스트가 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들은 라이네킹이란 서기관은 잽싸게 게슈타포에 알림으로써 초고속 승진을 하기도 했으나 나중에 비밀리에 사살당했다. 카를 에른스트는 륌 숙청사건 당시 총살되었고, 라르를 제외한 나머지 대원들도 룀 숙청 때에 암살되었다고 한다.

자료참조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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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덕분에 잘 보고 간답니다~
    즐건 하루 되시길 바래요~